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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동향
제목 <창> 현대 엘리트 체제의 시효와 패러다임의 진동, 이행 1
이름 관리자

 

현대 엘리트 체제의 시효와 패러다임의 진동, 이행 1

 

 이형용(거버넌스센터 이사장)


 

 

 ▷ 현대의 한계 ; 대의 체계=엘리트 체제의 시효

 

  현대사회 위기, 한국사회 위기, 시민사회 위기를 ‘엘리트주의 파탄’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연관해서 말하면, 전 사회적으로 혹은 역사발전 상에서 대리 대표제 =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넘어 ‘다음’을 모색할 때라고 봅니다.   

  다 알다시피 현대 정치 및 사회 체제의 한 근간은 현대적 대의제이고 이는 엘리트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체제의 불가피성, 순기능을 다시 거론하고 그 필요성을 방어하기 보다는 한계에 집중하고, ‘다음’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다음’은 더 이상 일거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현대 민주체제의 성과, 안정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다음’은 심화 → 진화 → 미지의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것은 유비컨대 한계를 확장하다가 마침내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경계로 들어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물론, ‘다음’은 지금까지의 성취의 부정은 아닙니다. 그 성과를 안고 오롯히 단계 상승하는 방식이겠지요 (캔 윌버가 말하는 홀론홀라키적 체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이행의 아마도 중간쯤에서‘거버넌스 패러다임’을 제출합니다. 그것은 대의제를 넘어 통의제(通議制) 쯤이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대척점에서 주장하는 현재 직접민주주의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정치사회 체제이행 패러다임으로서 거버넌스 정치 혁신의 함의는 한마디로‘제도 정치(권력)의 축소와 공동체 정치(역량)의 확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버넌스 정치의 관점에서 대의 정치인의 합당한 기본 관점과 자세의 대응을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즉, ‘우리가 당신들의 대표로서 주어진 권력을 바르게 써서 여러분을 위해 잘할게’하는 다짐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들의 대표로서 그간 불가피하게 대리 행사했던(그러면서 때로 혹은 자주 내 것인 양, 우리 패거리 것인 양 함부로 휘둘렀던) 권력을 이제 잘 돌려줄게’ 

  ‘다양하게 분권하고 자치 계기와 역량을 증진하는 데 무엇보다 힘쓸게’ 

  ‘우리는 모더레이터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더 잘 하도록 할 게. 다만 국민이 주는 봉급쟁이로서 생업에 매인 시민들이 잘 못보는 전체적 시야와 균형을 투사하는 역할에도 힘쓸게’ 

 

 ▷ 패러다임의 진동, 이행 - 정치 사회 일반의 문제 

 

  변화는 대리자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그 정치인들을 시민 대중을 대신하여 감시하고 시민을 대변하겠다고 하는 현대 (시민)사회 체제 내 다양한 엘리트 그룹들에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언론, 좌우 없이 기레기 소리 듣는 언론을 봅시다. 왜 기레기 소리를 듣는가? 사적 이익을 추구해서? 그보다는 공기(公器)인 미디어를 활용하여 자기 이념, 신념, 의지대로 세상과 대중을 끌고 가겠다는 미디어 엘리티즘의 파탄 양상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근대화 시기 지식 엘리트로서 비판적 프로티어의 추억, 관념이 관성으로 왜곡 전승(?)되었다가 오늘날 스마트해진 대중에 외면당하는 것이겠죠. 세상에, 1인 유투브만도 못한 거대 공영방송이라니! 

  미디어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상과 역할의 교정, 즉 판단은 대중이 스스로하게 하고, 언론은 이 판단을 위한 충실한 조력자 역할로 교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정확한 정보의 균형 있는 전달이 으뜸으로, 뉴스(정보) 왜곡은 물론 뉴스의 자의적 취사선택도 대중을 대상화하는 것이라는 자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논설, 논평, 칼럼은 대중을 프로파갠다 대상으로 기망하지 말고, 단지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기 견해나 지향을 담담하게 피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학문과 종교 지도자의 경우 예외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대학, 교수사회, 제도 종교, 이른 바 종교지도자? 스스로들 실상을 더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도 이 같은 맥락에서 돌아보는 것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실제적인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