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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방정치 리더칼럼] 춘향제 최초 기획자 최봉선님의 기록을 발굴하여 기리자
이름 관리자

[기고문] 

 

 

  

춘향제 최초 기획자 최봉선님의 기록을 발굴하여 기리자

 

 

 

 



 

박문화(남원시의원, 지정연 공동대표)

 

 

 

 

 

남원시민 모두가 춘향제를 충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우리는 춘향제의 시작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나서는 사람 하나 없이 어느날 우연히 시작된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춘향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남원이 춘향의 도시로 각인된 것은

최봉선이라는 분의 헌신적 노력이 있지 않았으며 가능하지 않았다고 감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봉선님이 누구입니까?

1931년 지역유지를 넘어 전국의 권번에까지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광한루 안에 춘향사당을 건립하는 것은 물론 

최초의 춘향영정과 함께 제1회 춘향제를 탄생시킨 인물입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춘향제를 만든 기획자로서

상상속 춘향을 현실화시킨 캐릭터 크리에이터이며

민족문화 수호를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가이자

성별과 신분의 차별을 타라하는데 앞장선 선구자이며

영.호남 벽을 허문 여장부라고 할수 있습니다.

 

최봉선님은 춘향제 37회까지 제주를 지냈는바

춘향제의 역사이자 증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또한 춘향봉향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최봉선님은 봉향회에 전답을 기증하면서 

춘향제의 제례를 위하여 노암동과 주천면의 전답을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 

오늘날 춘향문화선양회인 것입니다.

 

 

광한루 누각에는 대한민국의에서 내로라 하는 분들의 한시들 틈에 최봉선님이 쓴 한시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편린으로 남겨진 그 분의 흔적을 살펴볼 때

그 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춘향제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건만 

그 분의 나머지 자세한 행적과 기여가 무엇이었는지

그 분이 어디에서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고 제대로 된 연구와 기록도 없는 실정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춘향문화선양회 임원중 한 분도 최봉선님의 정신은 남원의 역사에 길이 선양해야 할 부분으로서 

양심이 있는 남원시민이면 지나칠수 없으리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남원시민에게 춘향제가 단순히 지역축제를 넘어

남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씨앗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씨앗을 뿌린 이를 외면할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최봉선님을 발굴하고 추모하고 가슴깊이 기려야할 것입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합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향후 최봉선상을 제정하거나 최봉선의 날을 지정하는 등

“현대의 춘향”이라고 할 만한 기념지적인 인물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업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유럽 3대 음악 페스티벌인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모두 그 축제의 시작점을 명확히 밝히며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인 춘향제 역시

최봉선님을 축제의 원점으로 기념하며

후세에 전한다면 춘향제의 역사에 깊이를 더하고 의미가 추가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