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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치분권 동향] 지방자치 원리로서의 지방민주주의와 주민주권
이름 관리자

( * 이글은 한국행정연구 제29권 제2(2020) 에 수록된 논문의 일부입니다. )

 

 

 

  

 

지방자치 원리로서의 지방민주주의와 주민주권

  

- 곽현근 -

 

 

 

1. 지방자치 원리와 지방민주주의

 

우리나라 지방자치 교과서에는 지방자치 원리를 단체자치주민자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두 원리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주둔 미군에 의해 주도된 일본의 지방자치 제도화의 산물로서 탄생한 것이다. 일본 헌법 제92조에서 지방자치의 정신’(地方自治本旨)이 언급되면서 일본 학자들이 해당 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개념이 도입되었다(阿部齊, 1996; 佐藤俊一, 2002). 지방자치분야에서 일본의 영향이 큰 우리나라의 학계도 단체자치를 유럽대륙 국가의 전통으로 받아들이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법적기능적인 관계를 다루기 위한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단체자치는 국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단체(조직)가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지위와 권한을 인정받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주민자치는 영미권 국가의 전통으로 분류되는 한편, 지방정부와 주민 사이의 정치적 관계에 초점을 둔다. 정치적 관점에서 주민자치는 특정 지역주민들이 해당 지역의 필요와 여건에 부합되는 삶의 질 향상의 수단으로 자치정부’(self-government)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주민들이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따라 운영되는 지방정부의 민주적 성격을 강조한다.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원리로서 강조되는 것은 서로 다른 유형의 지방자치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대륙과 영미라는 서로 다른 지역의 특수한 역사적 전통과 맞물려 마치 대륙형과 영미형이라는 배타적이면서 대체가능한 지방자치 유형이 존재하는 것처럼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지방자치 원리로서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개념화는 지방자치의 이념형’(ideal type)을 구성하기 위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전통으로부터 보편적인 원리를 도출한 결과물이다. 실제 현대적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원리를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요구되는 조건으로 제도화에 반영해왔다.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용어로부터 파생되는 혼란은 학술적으로 부여된 개념의 실제 의미보다는 개념을 구성하는 용어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단체자치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자치인 반면, 주민자치는 주민이 하는 자치로 간주하면서, 지방자치는 주체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렇게 볼 때, 두 개의 자치 유형을 암시하는 것 같은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라는 용어보다는 지방분권지방민주주의라는 학술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지방자치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제도 설계를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2)

 

2) 예를 들면, “어떤 지방민주주의인가?”라고 묻는 것이 어떤 주민자치인가?”라고 묻는 것보다 제도적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대안을 연상 또는 발굴하고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

 

주민과 지방정부와의 관계보다도 주민 스스로의 자치활동을 연상하게 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주민자치가 아니라 단체자치의 성격을 띤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는 공식적으로 대의민주제를 통해 주민자치(지방민주주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자치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는 것은 틀린 주장이다. , 지역의 공식 권한을 갖는 통치기구가 주민직선에 의한 주민대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민자치 원리가 반영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지방자치 제도사를 놓고 볼 때, 두 가지 지방자치 원리가 균형감 있게 강조되지 못하고, 지방분권만 상대적으로 강조되면서 주민자치(지방민주주의) 원리가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주장은 일면 설득력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지방민주주의의 담론과 제도화가 대의민주제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수준에 머물면서 주민자치 또는 지방민주주의를 편협하게 해석해온 것도 사실이다.

 

 

2. 지방민주주의와 주민주권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지방민주주의의 확장가능성을 보충해주는 개념이 바로 주민주권이다. 지방민주주의 원리가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따라 지방정부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지방정부의 작동원리를 강조한다면, 주민주권은 지방정부 주인으로서 주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게 해준다. 주민주권은 자신이 세운 지방정부를 자신의 의사와 통제 하에 두기 위한 주민의 다양한 권리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통해 구현된다. 주민주권의 담론은 가까워진 지방정부와의 관계에서 주인인 주민의 주권행사 방식이 대표를 뽑는 투표행위에 국한되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 대의민주제가 유일한 지방민주주의의 제도적 대안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미 민주성 결함’(democratic deficit)의 논의를 통해 대의민주제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다. 대의민주제의 민주성 결함은 해당 제도에 대한 인민의 통제’(popular control)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통제기제가 작동하지 못하면서 엘리트 중심의 정치와 행정은 주인-대리인 관계를 잊고, 자신들만의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대의민주제의 한계는 진정으로 우리 시대 민주주의 상태와 도덕적 수준(qualit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현존하는 민주주의들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이 민주주의와 관련된 훨씬 더 큰 가능한 아이디어의 범위안의 작은 부분을 나타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Pogge, 2002: 50 ; Castiglione and Warren, 2013: 157에서 재인용).

 

주민주권에 기초한 지방민주주의의 담론은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제로 전형화(typification) 또는 사물화 하는 인식의 오류를 벗어나, 확장되고 심화된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어준다. 주민주권의 관점은 주민과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시민의 주권행사 방식의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이전에 누릴 수 없었던 권한의 행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구체적으로 국민국가 규모에서는 비효율적으로 간주되었던 직접민주제, 숙의민주제, 풀뿌리민주제 같은 제도들이 지방정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주민의 의사와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기제로서 자리잡을 수 있다. 주민들은 이러한 제도들의 참여를 통해 단순한 유권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주권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나갈 수 있다.

 

실천적 또는 제도적 차원에서 주민주권 개념이 갖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위상은 모호하다. 무엇보다도 국민국가의 관점에서 국민주권 개념이 보편화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단순히 주민주권을 국민주권의 하위개념으로 간주하고, 국민주권의 원리에 의해 중앙정부에 부여된 최종 결정권한이 주민주권에 의해 성립된 지방정부의 결정권한에 우선한다는 소극적인 해석만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주민주권이 갖는 의미가 평가절하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장에서는 주권국민주권개념의 진화과정을 살펴보고, 국민주권의 정치공동체 모형인 민족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국민주권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주권의 달성전략으로써 주민주권의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