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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치분권 동향]분권자치 혁신을 위한 지방정치인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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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권자치 혁신을 위한 지방정치인의 책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01. 중앙-지방이라는 이항대립 

지방정치를 연구하는 모임에 왔으니까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치분권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든다고 확신하신다면 앞으로는 지방이라는 표현을 분별해서 사용하십시오. 

우리는 대화가 산만해질 때, “지방방송 좀 꺼라는 표현을 흔히 씁니다. “서울 올라간다”, “광주로 내려간다라는 말 대신 서울 간다” “광주 간다라고 써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이 중심이고 지방은 주변이라는 지긋지긋한 이항대립, 공고한 이분법적 질서를 해체해야 합니다.

 

02. 자치의 철학 

관련해서 세 가지 주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첫째, 지방이라는 용어를 폐기해야 합니다. 지방은 중앙을 전제합니다. 중앙을 제외한 그 나머지를 지시하는 용어가 지방입니다. 자치권을 가진 다수의 지역이 있고, 그 지역들의 연합체로서 연방(중앙이 아닌)정부가 성립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자치분권에 관한 논의를 진척시켜야 합니다. 사실, 지방이라는 단어를 없애거나 지방을 지역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여건이 어떠하든 생각의 틀은 이렇게 가져가야 자치권에 관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현행 중앙집권화한 권력구조의 폐해를 교정한다는 차원에서 자치권에 접근하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이 기능을 도외시하자는 건 아닙니다. 폐해 교정은 자치권 확대의 근거 중 하나일 뿐 전부이거나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역자치권은 인권처럼 고유하고 절대적인 가치로 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정부기획(권력기획)’으로서 지역자치권 확대라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셋째, 지역자치권 확대라고 했을 때 그 최종적 목표는 주민자치권 확대여야 합니다. 교과서적인 접근에 따르면, 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나뉩니다. 단체자치는 지역 단체가 자율적 책임과 권한으로 지역 행정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민자치는 주민 스스로 지역 행정을 이끌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 자치는 주민자치에, 분권은 단체자치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논의틀은 대부분 단체자치 확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주민자치는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단체자치는 주민자치를 돕고 고양시키는 매개권력으로 보는 게 옳습니다. 단체자치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분권은 자치를 뒷받침하는 제도입니다. 자치분권은 자치를 위한, 자치에 복무하는 분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치는 내가 나를, 우리가 우리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그리고 함께 다스리는 우리는 시민입니다. 시민은 자신의 삶터에서 이웃과 연대해 결정하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개인입니다. 개인은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더 좋은 사회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나눕니다. 통치가 아닌 자치, 동원이 아닌 참여, 거래가 아닌 합의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03. 스스로 내린 결정이 가장 옳은 결정 

세상이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금 이대로 굴러가도 상관없다면 정치는 필요가 없습니다. 정치는 의미 있고 유익한 변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세상의 변화가 느렸던 과거로 갈수록 정치의 기능이 약했습니다. 원시사회로 가면 족장 한 명이 모든 걸 결정했고 중세로 오더라도 임금과 신하 몇 명이 한 나라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다 했습니다. 

과거로 갈수록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체제였습니다. 세상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새로운 흐름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각 분야마다 전문화가 진행될수록 중앙집중형 의사결정이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너무 복잡다양해서 물리적으로 어렵고, 너무 구체적이어서 먼 거리의 누군가가 올바른 의사결정에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서 가장 잘 아실 겁니다. 여러분께 절대적인 권한을 준다 하더라도 광주나 부산에서 활동하라 하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됐고 고유의 목적과 이해관계, 특수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나누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악이 많은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과 바다 없이 평야 중심인 광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 천만의 서울과 140만의 광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야별로, 지역별로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가 가장 옳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선진국일수록, 잘 사는 나라일수록 자치가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자치가 진보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광산구청장으로 일했던 8년 동안(2010~2018) 추진한 정책 대부분은 활발한 자치로 더 나은 지역민의 삶, 곧 진보를 일구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도 썼습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사례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04. 지역등권, 국가균형발전, 자치분권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직제에는 자치분권비서관과 균형발전비서관이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둘을 하나로 모아 자치발전비서관실을 꾸렸습니다. 이 같은 청와대 조직의 변화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1998~2003)지역등권론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지역이 동질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지역등권론은 정치적 의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 의지를 구체화시키는 정책은 추진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2003~2008)에 이르러 지역등권론은 국가균형발전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정부의 주요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 작업을 추진했고, 공기업을 전국의 10개 지역으로 분산 배치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은 지역등권론도, 국가균형발전도 추가적인 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법률에 근거한 국책사업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시대 흐름이어서, 이 사업이 파탄에 이른 것은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정체했고 부분적으로는 퇴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균형발전이 다시 기지개를 켰습니다. 여기에 자치분권 전략을 보탰습니다. 자치분권은 지역등권론이라는 정치언어를 좀 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책언어로 바꾼 것이라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05. 국가균형발전의 기능과 한계 

지역등권론은 자치분권으로 치환되면서 자연소멸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치분권은 조금 생소합니다. 시민들에게 익숙한 지역정책은 국가균형발전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왜 문재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에 자치분권을 보탰을까 하는 점입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고도성장은 수도권과 일부 지역의 과잉발전, 여타 지역의 과소발전, 혹은 황폐화를 가져왔습니다. 공적 자원의 차등배분(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도권과 특정 지역이 나머지 지역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고착화시켰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상태가 심각해져 지역소멸까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한 전략이 국가균형발전입니다.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은 여전히 수도권을 전제하고 있으며, 수도권에 쌓인 문제를 지방을 통해 해결하려는 측면도 있습니다.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단기적으로 취해야 할 정책이 국가균형발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긴급구제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균형발전의 개념과 정책 내용에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발전 전망이 부족합니다. 중앙정부의 의지에 따른 시혜적 성격이 강합니다.

 

06.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권력기획과 성장기획 

중앙집권적인 대한민국의 권력 특성상 중앙정부의 의지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의지는 활용할 수밖에 없고, 활용해야 하는 공권력입니다. 다만 그 의지가 곧바로 균형발전으로 탑다운하는 것은 단기처방일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의지를 자치분권이라는 권력기획을 통해 균형발전으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지역의 내생적, 자율적,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치분권은 ()’()’의 이념, 곧 권력기획입니다. 균형발전은 발전’, 곧 성장기획입니다. 권력기획과 성장기획은 언제나 함께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성장기획은 중앙정부가 독점했고, 그 결과 수도권의 과잉발전 및 지역 간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앞으로의 성장기획은 해당 지역 구성원들 사이의 민주적 협치,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수립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구상입니다. 그래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독립적인 직제로 두었다가 효율과 집중을 기하기 위해 최근 한 곳으로 모았던 것입니다.

 

07. 자치분권 + 균형발전 = 포용성장 

튼튼한 자치분권에 근거한 균형발전 전략을 총괄해서 좀 더 간결하게 표현한 언어가 포용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용성장을 통해 포용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전략입니다. 

대한민국이 추구해온 성장전략은 배제를 전제한 것이었습니다. 배제적 성장은 시장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을 양산했고, 지역을 황폐화시켰습니다. 탈락한 개인과 황폐화한 지역을 사후 복지나 교부금으로 겨우 생존하게끔 관리해 왔습니다. 성공한 개인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을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취급했습니다. 

포용성장은 노동시장 안에서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밖에서는, 예컨대 복지교육환경주거 등에서 공적 보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노동시장 안팎의 정책은 세 가지 효과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처분소득을 높여 소득주도 성장을 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일과 휴식, 인적 자산의 준비 등 삶의 틀을 바꿔 혁신 성장의 기초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실패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불평등이 너무 심해지면 장기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깨달음에 근거합니다. 

여기까지는 계층 간 포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포용성장은 지역 간 포용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대전제는, 포용성장은 중앙정부가 시혜적으로 내려주는게 아니라 지역이 당연한 권리로 확보하는 공적 자원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에 근거해 문재인 정부는 20181030지방자치법전면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포용성장은 또한 양적 성장’, ‘수도권 중심 성장의 국정운영에서 사람중심 질적 성장’, ‘지역균형 성장으로 국정운영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입니다. 

양극화저출산고령화성평등환경문제교육지역불균형 등은 양적 성장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연봉이 아무리 높더라도 믿고 맡길만한 유치원이 없으면 엄마와 아빠는 맘 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노동생산성 저하와도 연결이 됩니다. 

연봉이 아무리 높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여건이 사막과도 같다면, 그곳에 사는 가족의 행복 추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지역 여건도 함께 좋아야 연봉의 구매력을 침해하지 않는 행복 추구, 나아가 연봉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 추구가 가능해집니다. 이 경우 지역의 활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도 향상될 것입니다.

 

08. 포용성장의 한 가지 예시 

전남 신안군은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 조례를 제정했습니다(2018.9.18. 신안군의회 제272회 정례회 본회의). 대형자본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시설을 지역에 짓습니다. 지역의 바람과 햇빛을 이용하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지역의 경관과 노동환경을 해치면서도 지역에 남는 건 없습니다. 

신재생에너지시설을 군 내에 지을 경우 지역민(지역농협이나 지자체 등 지역 공적 기관 포함)의 주주참여가 30%에 이르러야 인허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조례의 핵심입니다. 이 경우 시설을 지으려 할 때마다 발생하는 갈등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지역민에게 지속가능한 수익원이 생겨나고, 따라서 지역민들이 시설의 보호자가 됩니다. 

이 지자체의 시도가 가능한 배경에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규가 지역정부에 많은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주로 농어촌에 지어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분권이 이익공유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분권이라는 것도 자치공동체가 튼튼하지 않으면 목소리 크고 교섭력 좋은 일부 인사들의 놀이판이 될 수 있습니다. 섬으로만 이루어진 신안군은 이런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질의 자치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는 공동체자치가 존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안군의 자치기반,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규의 분권적 특성이 이익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되는, 자치분권이 포용성장에 기여하는 사례입니다. 

신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여러 영역에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그 자기결정권이 활발한 자치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포용성장의 토대가 튼튼해진다고 봅니다.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 관련, 일본 이이다 시의 햇님펀드사례, 지역정부가 이익의 일부를 환수해 지역민에게 나눠 주는 제주도의 사례도 있습니다.) 

포용성장론은 지금까지 사회적 계층을 중심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이제 지역’ ‘평화같은 영역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포용국가론은 자치분권과 혁신성장, 평화와 번영의 가치를 포용합니다. 따라서 자치분권에 기반한 성장기획이 포용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문장은 어색하지 않습니다. 

 

09. 포용성장과 지역들, 그리고 대한민국 

포용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두 기둥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입니다. 자치분권이라는 권력기획에 근거해 균형발전이라는 성장기획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균형발전과 차이가 납니다. 

포용성장은, 중앙정부가 차지하고 있었던 권력기획의 자리를 스스로 다스려서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다수의 자치권력들로 대체했을 때 지역들의 더불어 성장, 곧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역들은 곧 대한민국입니다. 포용성장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입니다. 

사회 각 분야의 작동 원리가 일관되게 자치분권화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의 포용성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우선 계층과 지역에서 포용성장 정책 추진을 시작합니다. 가장 시급하면서도 핵심 고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용성장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이라는 것입니다. 경제를 위해 사회를 동원했던 것이 지금껏 추진한 성장의 내용이었다면, 포용성장은 사회를 위해 경제를 복무시킵니다. 그랬을 때 경제 또한 질적 성장, 혁신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경제를 부릴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은 자치분권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발표의 요지입니다. 이때 사회는 수도권과 지역 모두를 포괄하는 지역들입니다.

 

10. 서울도 지역이다 

이른바 지역들에는 서울도 포함됩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구성의 첨단이 서울에 몰려 있습니다. 서울은 대한민국 안에서 1등 도시입니다. 문제는 서울이 세계에서도 1등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서울이 해야 할 일은 세계 도시와 경쟁하는 것입니다. 광주보다 낫고 부산보다 세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서울의 역할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방소멸을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저출산 고령화입니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지방소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입니다. 저출산은 배제적 성장에 따른 젊은 층들의 생존방어체계입니다. 그나마 이 젊은이들이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지역에 마련되지 않아 생겨난 현상이 고령화입니다. 

계층 간, 지역 간 차별과 불평등을 줄여 대한민국의 소멸(저출산)과 지역의 소멸(고령화)을 막자는 것이 포용성장의 목표입니다. 중앙정부의 시혜가 아닌 지역의 당연한 권리로서 균형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포용성장의 입장입니다. 지역의 당연한 권리에 연결되는 말이 자치분권입니다.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2018911일 내놓은 자치분권종합계획입니다. 

당장에는 중앙정부의 예산을 더 끌어오고, 균형발전의 표상이기도 한 혁신도시 2단계 정부지원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저는 지지합니다. 꼭 필요한 긴급처방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획과 전망들은 서울도 지역이다라는 생각에 근거합니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균형은 서울도 피해를 보게 만듭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축소판과도 같아서 서울 내부의 불균형이 문제가 되는 도시입니다. 통칭해서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강남과 강북이 다릅니다. 엄청난 부자들이 한쪽에 몰려 살고, 또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서 겨우 버티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지방이라고 하는 지역도시에서는 농담처럼 서울 난민이라는 말을 합니다. 길거리에 출퇴근 등으로 두세 시간씩 허비하는 게 열심히 사는 것이냐? 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서울을 정상화하는 데도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꼭 필요합니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의 분권이 필요합니다. 지역정부 안에서도 광역정부와 기초지역정부의 분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골고루 잘 살 수 있습니다. 1단계 분권이 중앙-지역이라면 2단계분권은 지역-지역이 될 것입니다. 

자치분권은 중장기 과제입니다. 당장에는 정부명령으로 할 수 있는 자치분권의 최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나아가 헌법과 법률을 고쳐, 지역정부의 자기결정권을 높여야 합니다. 더 멀리는 주민자치, 지역공동체, 지역결사체의 내용과 깊이를 확보해 사회 전체를 자치분권으로 재구조화시켜야 합니다.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11. 그린뉴딜 속 자치분권 

그린뉴딜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현재의 에너지 체제를 대안에너지로 바꾸는 것입니다. 대안에너지는 친환경이어야 하고 동시에 분권, 분산 에너지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자치권이 뒷받침되어야 대안에너지의 생산과 보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량의 방사능을 배출하는 원자력의 위험성은 심각합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가 강력한 실제 증거입니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원자력발전소 25기 중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그 영향은 국토 전체로 퍼질 것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시민들은 원전에 의존하는 전력 수급 방식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원하고 있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은 방사능 배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원전은 사회의 건강성과 민주주의까지 위협합니다. 

원전은 그 특성상 한 곳에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 다음 대형 송전탑을 통해 넓은 지역으로 공급합니다. 이 공급방식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거대자본을 파트너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원전 건설에 따른 토지수용 및 주민반대를 무마해야 합니다. 산과 들을 가로질러 고압의 송전선을 연결하는 송전탑도 세워야 합니다. 원전은 필연적으로 중앙정부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원전을 매개로 한 거대자본과 중앙정부의 카르텔이 형성됩니다. 이 카르텔이 비리를 양산하고 주민들을 억압합니다.그 사례 중 하나가 일본의 자민당과 도쿄전력의 유착관계입니다. 이들은 법이 규정한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더 많은 돈을 버는 방향으로 원전을 짓고 운영했습니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자민당-도쿄전력의 카르텔을 통제할 수 있었다면 후쿠시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밀양 송전탑 사건입니다. 765킬로볼트의 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의 위치 문제를 두고 벌어진 밀양시민과 한국전력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뻘 되는 경찰관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거대자본과 중앙정부의 카르텔 하에 가동되는 원전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돈 중심의 사회를 조장합니다. 주민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때 짓밟힌민주주의의 내용은 자치권입니다. 내 동네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인데 내 의사와는 상관도 없이 위험한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제가 광산구청장으로 일할 때 탈원전 에너지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중앙집중형 대규모 에너지 생산방식에서 지역자립형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소 확대, 가축의 분뇨를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바이오매스 사업, 연료전지 설비 구축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들을 통해 광산구는 2021년까지 전체 전력소비량의 20% 이상을 지역자립형 분산에너지 시스템에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가까운 숲을 조성하는 효과입니다. 

지역자립형 분산에너지 시스템은 세 가지 면에서 원전이 갖고 있는 특징과 정반대입니다. 

첫째 위험하지 않습니다. 둘째 거대자본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역자본, 중소자본이 참여합니다. 셋째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지방정부라 할지라도 마중물을 붓고 뒷받침하는 데 그 역할이 끝납니다. 마을 주민들이 앞장서고, 도시의 시민들이 주도합니다. 

결과적으로 지역민들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치권을 확보하고, 중앙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차단하는 분권을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자치권을 행사하는 경험이 쌓이면 정치적 의식도 크게 성장합니다. 나라 전체의 민주주의 확대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렉시스 토크빌이라는 프랑스 정치학자는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초등학교라고 상징화시켜 말했습니다. 지역자치(토크빌의 정확한 워딩은 지역의회, <미국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사람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경험하게 하고, 그 민주주의를 어떻게 향유하고 활용할지 가르쳐 준다는 것이 토크빌의 진단입니다. 

지역단위로 분산된 에너지 수급시스템은 위기에 대한 적절한 통제, 시기를 놓치지 않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합니다. 재난관리의 유효성을 높이고, 자치·분권 민주주의의 확대에 기여합니다. 자본권력-중앙정부의 동맹을 해체하고 시민권력-자치권력의 연대를 돕습니다.

 

 

12. 부동산, 안보, 코로나19, 국회의원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핵심 현안을 조금 심플하게, 조금 무지하게, 지나치게 간단하게 진단하는 만용을 부려보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는 습관적 위선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여겨주십시오. 

대통령의 말씀으로 가라앉기는 했지만 서울 부동산 문제 해결책으로 그린벨트 해제가 논의 됐습니다. 시골은 사람이 줄어들어 쇠락한 마을이 풀로 뒤덮힐 판인데 서울은 정반대입니다. 부동산 문제 해결, 인구를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집값, 땅값 비싸다면서도 그런 정책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합니다.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아직 지역으로 가지 않은 공공기관 100여 개의 추가 이전을 대통령에게 보고, 건의했습니다. 서울 여론은 시큰둥합니다. 위선입니다. 

서울을 이대로 둔 채 평화와 안보를 이야기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북한과 매우 가깝습니다. 재래식 포탄 몇 개만 떨어져도 서울은 올스톱에 사회적 팬데믹에 빠질 것입니다. 안보를 위해서는 인구뿐 아니라 주요 기관들은 전국 곳곳에 분산배치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인구가 집중된 도시를 중심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시골은 안전합니다. 앞으로도 안전할 것입니다. 삶 자체가 사회적 거리두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이후 사회 재구성에 균형발전이나 자치분권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이 또한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충청 호남 강원 제주 다 합친 의석수가 영남 지역과 비슷합니다. 수도권에만 121석이 몰려 있습니다. 지역 불균형이 중앙 정치권에 반영되고, 중앙 정치권의 수도권 편향 정치행위가 지역 불균형을 가중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비례뿐 아니라 지역대표성을 가진 상원과 같은 의회제도를 도입해 양원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이 없습니다. 이 또한 위선이 아닐까요?

 

13. 분권자치 혁신을 위한 지방정치인의 책무 

분권자치 혁신을 위한 지방정치인의 책무가 요청받은 강의 주제입니다. 책무에 대해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원고를 꼼꼼히 보시면 책무가 저절로 도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책무는 저에게도 당연히 적용되고, 노력하겠습니다. 

비슷한 강의를 하면 제가 서울을 아주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서울도, 어느 도시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특성을 이야기했을 뿐이고, 특성에 따른 피해 또한 서울처럼 과밀화한 도시가 입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연료는 갈등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천사들만 산다면 정치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갈등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공론화시켜 해결책을 모색해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일 것입니다. 여러 갈등 중 수도권과 지역의 갈등은 생각보다 공론화 정도가 약합니다. 갈등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느낌 때문에 갈등으로 치환하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지역 문제를 수도권과의 관계성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지역에 가둬 놓고 보려는 시각입니다. 저는 관계성 속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관계의 양상를 갈등으로 프레임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공론장이 좀 더 많아지고 활발해질 수 있습니다. 지역문제 해결의 연료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이 자리와 같은 공론장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씀드리면서 강연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민형배(2020), “분권자치 혁신을 위한 지방정치인의 책무”, 제6차 거버넌스지방정치연구서킷』  자료집(거버넌스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