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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치분권 동향] 2. 코로나19 사태와 지방분권의 중요성
이름 관리자

 

코로나19 사태와 지방분권의 중요성

-고재학 한국일보 경영전략본부장

 

1. 코로나는 문명사적 대사건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을 엄습한 코로나19 사태는 남미 원주민을 몰살시킨 천연두, 중세유럽의 봉건제를 무너뜨린 흑사병, 전세계 5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스페인 독감에 견줄만한 문명사적 대사건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종류의 감염병이 일회성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최근 몇 년 간 에볼라, 사스, 메르스 등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를 경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감염병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인류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지구생태계의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이제 팬데믹의 일상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코로나19는 경제와 의료와 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인간관계는 물론 정부 조직에까지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는 지금과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대면으로 이뤄지는 전통산업은 쇠퇴하고 온라인 교육, 재택 근무, 원격 진료 등 이른바 언택트 산업이 급성장할 게 분명하다.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의 급속한 변화에 맞춰 국가 통치 시스템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 발맞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 체계를 재정비하고 시장주의 관점에 치우친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 시스템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 지방정치의 성패를 좌우한 감염병 대응 역량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지방자치단체의 행보가 요즘처럼 주목 받은 적은 없었던 듯하다. 1991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지방정부는 늘 중앙에 종속된 하위 행정기관에 머물렀다. 중앙의 통제와 지시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선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중앙정부에 적극적으로 정책 건의를 하며 현장 방역을 주도했다.

예컨대 경기도 고양시는 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만들었다. 고양시의 성공적인 원스톱 진료 시스템은 ‘드라이브 인 농산물 판매’, ‘드라이브 인 예배’ 등 팬데믹 시대를 극복하는 비대면 생활양식을 정착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경기도와 경남도는 침체된 지역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했고, 이는 중앙정부의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전북 전주시는 착한 임대인운동을 처음 제안해 전국적인 캠페인으로 확산시켰다. 부산 기장군은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자체 예산으로 주민들에게 마스크를 무상 공급했다. 서울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가장 먼저 시행했고 중앙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기준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지방정부는 공공과 민간, 지방정부 간 정책 공유를 통해 수평적 협력의 모범을 보여줬다.

물론 현장 방역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돋보였던 건 중앙과 지방정부 간 효율적인 협업 체제가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총리가 지휘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재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책임지고 있는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일선 지자체 보건소 선별진료소와 긴밀히 소통하며 역학조사와 현장 방역, 환자 이동, 격리시설 관리, 검사인력 보강 등의 실무 작업을 주도면밀히 수행했다. 앞선 사례 발표에서 이재준 고양시장이 언급했듯, ‘중앙정부가 동맥이라면, 지방정부는 모세혈관’ 역할을 한 것이다.

지방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역량은 단체장의 리더십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신천지 교회 폐쇄 등 과감한 행정명령을 통해 선제적으로 코로나에 대응했다. 침체된 지역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전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일괄 지급하는 초유의 정책도 취했다. 이 지사가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데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 내 공공과 민간의 방역 협력을 통해 코로나19에 적절히 대응해 온 반면, 세계 최고의 의료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의 의료 시스템은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 브라질 멕시코 등은 국가 최고 지도자가 코로나 팬데믹의 위험성을 잘못 판단해 국가적 위기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국가의 경우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 탓에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방분권이 강한 나라가 효율적으로 바이러스를 차단했던 것도 아니다. 임승빈 교수의 주제발표에서 드러나듯, 중앙정부와 단절된 일본의 분권 시스템은 팬데믹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지방분권이 강한 나라일지라도 지방정부의 재정역량이나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수준에 큰 차이가 날 수 있음이 도처에서 목격됐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주지사와 공화당 주지사가 지역 봉쇄를 놓고 전혀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잇따랐다.

 

 

3. 기후재난 시대에 대비한 우리의 과제

 

기후변화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을 비롯해 홍수, 가뭄, 산불, 태풍 등의 기후재난을 일상으로 만들 것이다. 이처럼 빈발하는 기후재난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 6개월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중앙과 지방이 함께 하지 않으면 다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현장 방역을 통해 감염병의 위험을 막고 지역 주민의 일상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는 지방정부에 자율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기후재난 시대에 적극 대응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지방정부가 현장의 정책 아이디어를 과감히 수용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지방정부의 역량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됐다. 지방정부가 코로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메르스 사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메르스 이후 중앙정부(질병관리본부)에 국한된 감염병 검사권한이 지역 보건소에 이양됐고 지방정부도 역학조사관을 둘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기후재난에 선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중앙권한의 이양, 입법ㆍ재정권 강화, 지방정부의 책임성 강화,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을 포함한 지방분권 관련 법률의 뒷받침이 요구되는 이유다.

앞선 사례 발표에서 최대호 안양시장의 마지막 제언은 지방자치의 미래를 위해 적극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앙 및 광역정부는 상향식 분권화, 기능 중심의 포괄이양, 자율과 책임의 조화, 사회 구성원의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지방정부의 자치조직·행정·입법·재정권 강화를 통한 자치분권 실현으로 기초지방정부의 ‘스몰베팅’사업을 ‘스케일 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함.”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저서 ‘글로벌 그린뉴딜’에서 제안한 ‘피어 어셈블리 (Peer Assembly)’는 지방정부가 기후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제도로서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피어 어셈블리는 ‘참여자가 동일한 자격을 가지는 동료의회’를 뜻한다.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보완적이고 상호 협조적인 관계로, 지역 사회의 모든 사회기관과 단체들이 지방정부와 손잡고 기후재난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지방분권형 국가운영 방식이다. 시민단체와 지방정부가 투명성 개방성 민주주의를 토대로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지역 내 모든 공동체가 ‘분권과 자치’라는 관점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기후재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는 수평적 협의체인 셈이다. 기후재난이 빈번해지는 시대에 지역사회의 안전을 지키려면 전체 공동체가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제언이다.

“피어 어셈블리는 도시 및 카운티의 선출직 공무원과 지역 상공회의소, 노동조합, 경제개발 기관, 공공 및 민간대학 그리고 시민단체의 대표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지방정부의 감독을 받는 피어 어셈블리에는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녹색 시대로 전환하기 위한 그린뉴딜 로드맵을 수립하는 과업이 부과될 것이다.” “피어 어셈블리는 공공복지의 증진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대중이 지속적으로 관여하도록 함으로써 거버넌스에 방향성을 제시한다”(글로벌 그린뉴딜)

 

둘째,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유효한 정책적 수단은 지방분권 강화를 통한 국가균형발전이다. 중앙집권적이고 수도권 중심적인 국정 운영은 팬데믹 위기에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과 1,000대 기업의 70%가 몰려 있다. 언제든 감염병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쉬운 조건이다. 최근 수도권의 집값 폭등도 산업화 이래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수도권 중심의 경제 성장이 낳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청와대 국회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대학, 의료기관 등의 지방 이전을 비롯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좀더 속도를 내야 한다.

 

셋째, 지방 공공의료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19 환자의 90% 이상을 전국의 공공병원이 담당했다. 물론 경증 환자 위주다. 그런데 공공병원 수는 전체 병원의 5.7%(2018년 기준)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전체 병상의 90% 이상은 민간병원이 갖고 있다. 그나마 규모가 있는 공공병원이라야 200~300 병상 정도로 민간 대학병원의 하위 기능을 수행하는 수준이다. 감염병 대유행이 닥쳐 중증 환자가 급증하면 공공의료 시스템으로 감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갖추려면 공공의료 부문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공공부문 의사 수를 대폭 증원하고 공공병원을 증설해야 한다. 영리주의에 치우친 민간병원을 팬데믹 위기 대응에 신속히 동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광역 시ㆍ도 단위에는 1,000~1,500 병상 규모의 공공병원을 만들어 대유행기에 쏟아질 중증 환자를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병원 간, 공공과 민간병원 간 수평적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공공 분야 의료인력을 늘리되 영리 추구에 혈안인 성형외과 피부과가 아니라 팬데믹과 관련된 감염내과 응급의학과 등을 강화하는 의료인력 개편안도 검토해야 한다.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2020.8.20 기준>